네팔 여행 단상

네팔 여행을 하며인상 깊었던 말들이나 생각들을 짧게 정리해봤다. 무거운 주제들도 많이 다루고 있으니, 네팔 여행에 대해 가볍게 보고 싶다면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묶음을 추천한다.

1. 윈드폴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커피를 아침마다 내려 주시고 사온 과일들을 주시며) “음식은 최대한 빨리 많은 사람과 나눠 먹어야 한다”

2. 카트만두도 포카라도 오토바이가 주된 교통 수단이였다. 값싼 가격, 간단한 조작법, SUV를 뺨치는 운송성 (저 조그만 오토바이에 무려 7명이나 태울 수 있다), 뛰어난 접근 능력을 고려하면 오토바이는 (특히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과소평가된 발명품이다. 이미 개발도상국에서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고, 이는 역으로 여러 세계적인 오토바이 기업을 인도에 낳았다. 네팔에서의 시간은 이처럼 일상적이지만 너무나도 위대한 우리 일상의 발명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비를 효율적으로 막으면서, 간편하게 보관하기 위해 접을 수 있도록 진화한 우산, 해발 4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산장에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국을 맛볼 수 있는 컵라면, 상체를 통해 추가적인 지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악 스틱 등. 모든 도구들이 소중하게 다가왔고,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목적을 200% 달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손과 혁신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됐음을 생각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미국 특허청에는 우산만 전문적으로 심사하는 심사관이 4명이나 있었고, 우산과 관련된 특허가 300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큰 꿈을 꾸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작은 꿈들이 모여, 누군가가 큰 꿈을 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3.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 중 하나는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다. 치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꾸준히 쌓여가는 쓰레기들의 조그만 산. 점점 심해지는 악취로 자신들의 존재를 격하게 알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주민들에게는 익숙해 져버린 풍경.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이미 쓰레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네팔인보다 깨끗하다고 주장해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긴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다만 골목 구석구석마다 놓여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 아파트 단지마다 의무화된 재활용 분리 시설, 용량별 구분되어 있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매일 밤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동네를 순회하는 청소 차와 같은 시스템과 장치들이 우리의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 (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해 추가적인 장소가 필요해 최근에 상암동 인근이 새로운 부지로 선정되었다. 쓰레기는 우리 눈에서 효율적으로 사라질 뿐이지, 당연하게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의 시스템과 정책들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썩 괜찮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시작했는가다. 도대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쓰레기 처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을까? 누군가가 이런 전략적 결정을 내린걸까? 국회에서 여러 법안들이 나왔다면, 그 법안들을 입법을 한 국회의원은 누구였을까? 그때 당시에는 당쟁이 없었을까? 그때는 서로를 어떻게 설득했을까? 우리는 왜 전후에 우리보다 잘 살았던 동남아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을까?

수 많은 평행 세계에서는, 어떤 서울의 거리는 쓰레기가 쌓여 가는 타멜의 거리와 다르지 않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국가에서 살고 여행을 다니며 느낀 것이 있다면 한국의 인프라가 정말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하수도, 전력, 도시가스, 통신망, 금융 시스템 등, 우리 삶의 뼈대를 이루는 시설이다. 한국에서는 무엇 하나 크게 부족한 점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현재지만, 변화율을 보면 실로 더 놀랍다.

한편 1950~60년대 경제 개발이 우선시 되던 시기에 하수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어왔다. 비록 1966년 하수도법이 제정되었지만 1976년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하수처리 시설인 청계천 하수 처리장이 준공되었다. 1980년에도 우리나라의 하수도 보급률은 8.3%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경제개발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으로 환경오염과 수질 악화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함에 따라 하수도 부문에 대한 정부 투자가 증가하였다. 특히 1990년 발생한 수질오염사고는 하수처리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하수도 보급률 확대와 더불어 고도처리시설을 도입하여 주민 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인 하수처리시설 건설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하수도 보급률은 2000년 73%, 2010년에는 90.1%에 도달하였다.

서울하수도과학관

나는 변화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고, 숫자의 변화만 읽기에, 위에서 얘기하는 변화들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여행을 가서, 어떤 나라를 가므로서, 우리나라의 과거를 그 나라의 현재와 빗대어야만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8.3에서 92.5의 변화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희생들을 숨기고 있다. 지금도 하수도 보급률 100%를 향해 분주히 뛰는 분들, 쓰레기 처리와 하수도와 같은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결정을 내린 모든 분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도 이런 국가적 중요한 결정들을 미래 지향적으로 내릴 수 있길 바란다. 조선의 어떤 왕에 관한 또 다른 영화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이런 위대한 변화들을 얘기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조선보다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훨씬 값지다.

4. 네팔에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반복적인 일들이 사람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면, 사람이 신호등을 대체하고, 주차 차단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역행적인 상황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얘기하면 이 사람들의 하루 총 생산량은 교통을 조절하기 위해 손을 흔드는 이 행위에 매겨진 임금이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행위에 시장이 부여하는 임금은 매우 낮을 것이다. 네팔이 우리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수 많은 네팔인이 이렇게 자동화 할 수 있는 일들을 값싸게 노동력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할때 더 높은 가치가 창출되고, 제한적인 시간을 더 유의미하게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현대화된 네팔은 어떨까? 분명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유럽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네팔만의 특색을 당연하게 잘 유지하지 않을까? 이 가슴 두근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미래를 꿈꿔본다.

GDP 얘기를 살짝 했으니, 조금 더 해보도록 하자. 기술 애널리스트인 Benedict Evans는 사람들이 2021년에만 3경(!) 장의 사진을 아이폰에서 찍었다며, 위와 같은 지표는 GDP를 통해 드러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GDP 계산에 들어가려면, 생산이 되어 판매가 되고, 판매 대금이 다시 소비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시 생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순환 해야 하는데, 네팔에서는 이 순환이 끊어지는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밤낮으로 펼쳐지는 종교 의식에 수 없이 바쳐지는 공양품들. 수 많음 음식들이 바쳐진 뒤 버려졌고, 신들의 조각상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 흘러 내리는 음식들은 어디로 가는가? 타멜 거리의 쓰레기들과 공양품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종교 의식을 통해 치유받는 마음을 GDP로 환산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 행위와 그 마음이 더 중요함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비종교인으로서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는 어려웠다. 더불어서 비는 그 대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비는 그 자체에 더 시간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 한 켠이 이상했다. 비는 것 그 자체가 목적과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아마 국카스텐의 보컬인 하현우가 얘기했던 것 같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빈 소원이 이뤄졌다면, 별똥별이 질 때 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찰나에도 생각할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공양 또한 그런 적극적 간절함의 일환이길 바라본다.

5. 거리의 가판대에는 고기들이 도축된 채로 내장을 버젓이 드러내고 있었다. 돼지든, 소든, 닭이든, 버팔로든 가리지 않았다. 적외선 조명 아래 정갈하게 정돈된 한국의 정육점과 달리, 네팔의 정육점들은 강렬하고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고기를 선전하고 있었다. 동물들도 격렬하게 자신의 운명을 알리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가판대 사이로 소와 길고양이들, 떠돌이 개들이들이 한량처럼 뒤섞여 돌아 다녔다.

처음에는 사뭇 징그럽다고 느껴졌지만, 계속 보다보니, 네팔의 풍경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가 섭취하는 수 많은 음식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어디서 온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식탁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신경을 쓰면 알아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 유리의 궁극적인 연장선에는 랩 미트와 같은 대안적인 육식이 있을 것이다. 유리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유리 자체는 좋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모를 때, 우리는 먹는 대상 그 자체를 잊게 된다. 살아 숨 쉬고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으며 음메하며 우는 소가 아니라 화려한 마블링과 피 그 자체로 여겨 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유일한 모습이니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우리가 먹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일 것이다. 네팔에서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가판대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너가 먹는 것이 이것이라고 강렬하게 일러주는 것이다. 그것이 육식이라고.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의 위대함은 어떤 문제를 던져도, 인간의 개인주의와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겠다는 욕구를 기반으로 시스템 내에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문제도 역시 자본주의 안에서 또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웰빙, 유기농이란 흐름이 나왔고 앞으로도 많은 자연주의적 흐름들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지금 식탁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아니라 시작이 궁금한, 만지면 시작부터 공정 과정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제품들이 대세가 오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것들이 친절하고 완벽하게 기술을 통해서 구현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만, 가까운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6. 사실 나는 우기에 트레킹을 갔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악조건과 싸워야 했고, 제일 중요한 경치를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기라는 사실을 호기롭게 무시(?)하고, 트레킹을 가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 일단 내가 여행지를 선정할 때 극한의 P(MBTI)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2. 이직을 하며 약 10일 간의 휴가가 생겨 여행 가기로 결정
  3. 중국과 일본은 모두 갈 수 없었고, 휴양지는 가고 싶지 않았음. 더불어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멀리 갈 수 도 없었음
  4. 그렇게 Google Flights에서 소거법으로 접근 하다보니 네팔이 눈에 띔
  5. 나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포카라 / 히말라야에 대해 굉장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안나푸르나 사진 보고, 행복 회로 팽팽 돌린 채 그대로 낙찰
  6. 히말라야 트레킹은 생각하지도 않고, 일단 되는대로 비행기 표 구매. 그리고 비행기 표 일정에 트레킹 일정을 맞춤 (반대가 정상 🥲)
  7. 우기라고 해서 검색해 보았더니 일일 강수량이 30mm 가량이여서 오! 별로 안 오네라고 정말 단순히 생각

너무나도 행복한 여행이였지만, 돌이켜 보면 매우 매우 중요한 두 부분을 간과했다. 첫째, 일정은 목적에 맞춰야 한다는 것. 사실 대부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다고 하면, ABC (Annapurna Base Camp) 루트를 선택하고, 이 루트는 넉넉하게 5박 6일을 잡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도 트레킹을 가려고 했다면 이 일정을 최우선시 했어야 했고, 여행 일정도 이에 맞춰야 했다 (반대가 아니라). 두 번째, 우기는 단순히 강수량의 함수가 아니라, 구름량과 같은 다양한 변수의 함수라는 것. 비가 적게 오더라도, 하루종일 구름이 짙게 끼여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머피의 법칙처럼 매일 매일 현실으로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성수기인데는 이유가 다 있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부분을 놓치지 말자 🙂

안나푸르나를 완전 정복할 수 있는 일주 트래킹 코스. Source: albinger.me. 왼쪽의 Poon Hill(!!)이라는 무려 3200m의 언덕을 중심으로 그 근처를 둘러 보았다. 짧게 갔다 오는 코스는 Annapurna Base Camp로 바로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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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oahaza.blog: 조아하자 Avatar

    그 유명한 하와이도 겨울은 비수기인데, 돈 아끼려고 비수기에 하와이에 간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하와이도 비수기는 비수기인 이유가 있더군요. 겨울에도 따뜻했지만, 비수기에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비가 많이 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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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기어이 우기에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으니, 우기의 악조건을 친절하게 (?) 알려드리고자 한다.

  • 써놓은대로, 비가 계속 올 확률이 높고, 비가 계속 오지 않더라도, 구름이 높은 확률로 짙게 깔려 있다. 4000m 이상으로 올라가야 구름이 어느 정도 개이는듯 하다
  • 어떤 날들은 안개와 흰 구름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 가시거리가 낮아서, 배경만 크롭 아웃한 영화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당연히 비가 추적 추적 내리니, 계속 우비를 써야 하고, 우산을 쓰고 트레킹을 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비에 젖으면 춥다.
  • 양말과 신발, 그리고 비에 젖는 모든 것들을 지속적으로 말려줘야 한다. 하지만 일사량이 낮으니 당연히 잘 마르지 않는다!
  •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곳곳에 유실되어 있다. 가이드 / 포터와 동행한다면 알아서 길을 찾아주시니 염려할 필요가 크게 없지만, 혼자 간다면 길을 잃기 매우 좋다. (길이 유실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히 미리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포터들은 길에서 마주칠때마다 끊임없이 얘기를 하며 정보를 주고 받는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막 건너온 사람의 말이 가장 정확할테니까). 도로가 유실되며 곳곳은 급류로 변하고, 그런 급류들은 절벽을 타고 폭포가 된다. 그래서 우기에는 몇 천개의 폭포가 새롭게 태어난다. 또한 도로가 유실되서 원하던 장소까지 지프를 타고 못 갈 수도 있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최악으로 꼽는 것은 아마 거머리일 것이다. 수 많은 거머리가 1500 ~ 3000m 사이 구간에서, 땅에서 솟아 오르고, 하늘에서 떨어진다. 대부분 떼어내긴 했지만 내 몸에 적어도 몇 백 마리는 잠시나마 기거했던 것 같다 (동영상 참고)
  • 거머리가 집단 지능이 있어서, 어떤 조직적 전술을 펼치는 것은 아니여서 각개격파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매우 매우 피곤하고, 물리면 실제로 아프고 빨리게 되면 피도 생각보다 많이 흐른다! 징그러운건 덤이다.
  • 그리고 산이니 당연하게 곤충들과 친해져야 한다. 만약 우리 눈이 카메라의 광각이라면, 밤에는 어떤 광각을 보듯, 살아 움직이는 혹은 꿈틀거리는 혹은 날아 다니는 친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가 내가 본 푼힐이고, 나머지가 다른 시기에 갔던 다른 사람들의 경치다. 더 공유하면기분이 다운되니 비교는 여기까지 하겠다 🥲 출처: Here

어떤 의미로는 완벽히 실패한 여행이였다. 푼힐 전망대(?)에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사진 참고), 3일동안 비와 싸워야 했다. 그 3일동안 끊임없이 긍정과 체념 그리고 일정을 이따위로 짠 나 대한 자책의 진자를 탔다. 실로 천의 자연 경관을 보는 트레킹이였다기 보다는 천의 자연 경관을 아쉽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롯지를 오가며 많은 롯지 주인님들과, 윈드폴에서 만났던 친구들, 그리고 고르카에게 이 글을 바친다 (뜬금). 고르카에게는 다음 문단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또 돌이켜 보면, 이런 바보같은 후기를 남길 수 있으니 의미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트레킹 하는 내내 우기 트레킹만큼 인생과 비슷한 경험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에 다달아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처럼, 목적지에 다다르더라도, 경치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비가 그치고, 잠깐 햇살이 비춰, 구름이 걷혀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순간 (아래 사진 참고)들이 이따끔씩 찾아온다. 인생에서도 그렇게 모든게 맑아져 나아갈 길이 자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지나가는 찰나를 소중히 여겨 이정표로 삼고 동력을 태워 나가야 한다. 다음 이정표까지.

잠시 날이 개었던 촘농의 오후. 자세히 보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
잠시 날이 개었던 촘농의 오후. 산을 휘감고 있는 구름들이 신비롭다.

7. 나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고르카라는 분이 포터와 가이드를 맡아 주셔서 3박 4일동안 동행했었다 (알고 보니 윈드폴에서 인기가 제일 많으신 분 중 하나였다 :)).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버려진 천막에 들어가 비가 잦아 들기를 기다리며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기도 했고, 롯지에서 고르카 사모님이 담궈주신 Raksi도 같이 마시며, 서로 거머리를 떼어내 주기도 했으니 나름 낭만적인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인상적인 행동들과 일화를 간단히 정리했다.

  • 30년간 가이드를 하시면서 푼힐을 700-800번, ABC를 250번, 최근에 루트가 개발된 타마르 마할은 80번 정도 오셨다고 한다. 매번 오시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실까 생각했었다.
  • 루트 중간 중간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조그만 비석과 사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잎을 놓고 간단히 목례를 하시곤 했는데, 나에겐 굉장히 정감이 갔다.
  • 롯지를 돌아다니며 바나나를 선물로 주셨다. 바나나 하나였지만, 그것을 메고 여기까지 왔을 생각을 하니 크게 느껴졌다.
  • 처음에는 포터로 일을 시작했고, 그때 당시에는 100 여명으로 큰 무리를 지어 EBC (Everest Base Camp)까지 올라가곤 했다고 한다. 셸파, 요리사 등과 동행했고, 심지어 테이블, 의자와 같은 자재 도구들도 짊어지고 등반했다고 하신다
  • 원래는 영국인 용병(구르카)가 되고 싶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엄격한 학력 시험을 통과하실 수 없었다고 한다.
  • 트레킹 중간 중간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방수가 되는 나뭇잎, 이끼 속을 타고 나오는 물은 필요할 때 마셔도 된다는 것, 곳곳에 숨어있던 버섯과 개구리을 귀신같이 찾아주셨다.

8. 네팔에서도 청년들의 디지털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페북을 제일 많이 쓰고, 틱톡을 제일 많이 본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플랫폼에서 개인화된 것을 본다. PM이여서 그렇겠지만 이제는 미국의 패권이 군사와 금융과 문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제품에서 나온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태평양 건너서 재택을 하고 있는 구글, Meta, Apple의 한 PM의 선택이 수십억 명의 삶을 바꾼다. 그런 헤게모니에서 틱톡이 중국에서 나왔다는 것 실로 대단한 일이다. K-문화뿐만 아니라 K-프로덕트도 세계를 주름 잡는 날을 기다려 보고, 그런 프로덕트를 내가 손수 만드길 꿈꾼다.

9. 카트만두에서도, 포카라에서도 네팔 사람들은 모든 법석을 새삼 평화롭게 마주한다. 사방이 연결 되어 있는 광장에서도 기도하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뒤섞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곳은 횡단보도도, 우측 보행이라는 개념도, 보행자 우선이라는 구호도 없다. 각자도생 해야한다. 도로는 더욱 심하다. 중앙선, 차선의 개념이 전무하다. 신호등은 사치다.

철학자인 Alfred North Whithead는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명의 진보의 방증이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와 너와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보장하는 것일 것이다. 2014년에 세월호가, 2022년에 이태원이 우리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건 김훈이 말했듯이 우리가 모두가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걸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그 길에 가지 않아서, 그 배에 타지 않아서 단순히 살게 된 것이다.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아직은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뼈아파 치유를 논할 수 없다. 우리의 문명의 바퀴가 헛돌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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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유명한 하와이도 겨울은 비수기인데, 돈 아끼려고 비수기에 하와이에 간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하와이도 비수기는 비수기인 이유가 있더군요. 겨울에도 따뜻했지만, 비수기에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비가 많이 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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