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 교수가 쓴 [마음 읽기] 당신이 꼽은 올해의 인물은?에 영감을 받아서 나도 한 번 한 해를 정리하는 연기(年記) 를 써보기로 한다.
올해의 공간: Li Sing Playground
홍콩은 굉장히 엄격하게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 2년동안 홍콩을 나갈 엄두 조차 하질 못했었다. 그래서 홍콩 안에서 반복적으로 새로움을 찾을 수 있고, 의미를 되풀이해서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매 주 풋살을 했던 Li Sing Playground는 나를 홍콩에 있을 수 있도록 지탱해준 고마운 공간이다. 홍콩의 나를 키워준 건 팔 할이 바로 여기서 했던 풋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여기서 부대꼈고 풋살장 밖에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많은 인연을 여기서 만났다. 그렇기에 매번 설레고 매번 새롭다.

올해의 인물: Chris Dixon
수 많은 Web3의 선구자가 있지만, 때론 과할 정도로 열정적이게 그리고 가장 멀리 내다보며 Web3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사람은 아마 a16z의 Chris Dixon이 아닐까 싶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 십 수 년동안 그의 멘탈 모델 (mental model)이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보여주며, Web3뿐만 아니라 어떤 새로운 기술이던 그 기술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내내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제는 Web3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그의 글 3개를 추천한다.
- The next big thing will start out looking like a toy (2010)
- What the smartest people do on the weekend is what everyone else will do during the week in ten years (2013)
- Come for the tool, stay for the network (2015)
올해의 문장: 심외무도
언제부터인가, 이따끔씩 떠오른다. 심외무도(心外無刀). 직역하자면 마음 이외의 무기는 없다 이런 뜻인데, 이걸 긍정형으로 바꿔서 말하면 마음이 최고의 무기라는 뜻이 된다. 제갈량이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출처는 불분명하다. 마음이 무기라는 간단한 명제가 좋아서 기억했다가 곱씹을수록 멋있어서 혜성처럼 내 마음을 주기적으로 돌고 있다.
올해의 음식 : 집밥
근 2년만에 서울에 돌아갔었다. 그 사이 우리 집은 이사를 가서 물리적으로는 새 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가족 덕에 금새 내 집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 집 식탁에서 가족들과 먹는 밥은 벌써 집밥이 되어 있었다. 설령 배달 음식이라 할지라도. 집을 자주 떠나보니 알게 되었다. 집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나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그리고 그 곳에서 가족들과 먹는 집밥은 항상 옳다라는 걸.
올해의 음악: It Could Happen To You
Spotify에 따르면 내가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1976년에 나온 Ryo Fukui의 Scenery의 첫 번째 트랙 It Could Happen To You이다. 유려하고 경쾌한 연주에 반해서 일하면서 앨범채로 정말 많이 들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유튜브의 알고리듬에 이끌려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후에는 음악이 좋아 남게 되었다. (“Come for the algorithm, stay for the music”). 흥미롭게도 그는 22살부터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워 굉장히 늦게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늦은 시작처럼 사후에서야 큰 조명을 받았다. 삿포로에는 그의 아내가 지금은 홀로 운영하는 Slowboat라는 재즈 바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또 가야만 하는 곳이 늘었다.
올해의 영화: 진격의 거인
올해 크게 인상을 남긴 영화 작품은 없었다. 애니메이션까지 아우른다면 진격의 거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우익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작품에만 주안점을 둔다면, 거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새로운 구도와 감정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참신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액션물 보다는 철학물에 훨씬 가깝다.
올해의 책: Snow Crash
비단 메타버스라는 말을 처음 정의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Neal Stephenson의 Snow Crash는 소설 그 자체로 위대하다. 내가 태어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미래의 가상 현실과 고대 바빌론 역사를 맛있게 버무리며, 과거와 현실과 미래가 혼재된 미래 세계를 아주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다. 양 극단을 마주치며 내는 소리는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 중 단연 가장 독창적이며, 심지어 굉장히 재밌기까지 하다. 한국어 판 리뷰를 보니 번역이 꽤나 부실한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내가 손수 번역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끝으로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이 책이 이룩한 가장 작은 성취다. (굉장히 영어적인 표현인데,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Leave a comment